康賢實(강현실)참어머님自敍傳(자서전)

康賢實 自敍傳 第1章「첫 만남」初めての出会い

Author
fujio kim
Date
2019-03-17 14:09
Views
154
첫 만남

그날은 1952年 5月 10日 土曜日(토요일)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敎會에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범냇골에 산다는 이상한 청년을 만나봐야 되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만나 보고 똑똑하고 하나님께 쓰일 수 있는 이라면 전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으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敎會(교회)를 나섰습니다.

오후 4시경 길을 나서려니 비가 거의 그쳐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의 이름도 알지 못했고 얼굴도, 집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여대생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남자들만 자취하고 있는 모양이라는 말만을 기억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범냇골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남자들만이 자취하는 집이 어디냐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기야, 그당시에 자취하던 남자가 한둘이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리라,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청년에게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물어 보며 돌아다녔습니다.

얼마쯤 헤매다가 한 부인이 「저 꼭대기에 올라가면 우물이 하나 있는데, 그 우물 옆에 허술한 집이 하나 있어요. 그 집에 청년 둘이 사는 듯합디다.」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오르막길로 쭉 올라가니 과연 우물이 하나 나왔습니다. 양재기로 퍼 올리는 샘물 같은 우물이었습니다.

우물에서 손을 씻고 있으려니 곱게 생긴 한 아주머니가 물을 긷기 위해 우물로 나왔습니다. 연세는 한 오십여 세 쯤 되었는데, 피부가 깨끗하고 정정한 분이었습니다. 피난시절이라 국방색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무척 기품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에게 「이 근처에 청년들이 자취하는 방이 있다는데, 혹시 어딘지 아십니까?」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댁은 어느 회사에 다니는데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내 옷차림을 보고 어느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짐작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무릎 아래까지 오는 약간 짧은 치마를 입고, 남자 구두 같은 걸 신고, 聖經(성경)과 찬송가를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아닙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나는 예수님을 자랑하고 진심으로 전하고 싶어서 누구를 만나도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보더니 「아, 그러면 우리집으로 들어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집이 어디세요?」 하고 물었더니 「바로 이 집입니다.」라면서 바로 옆집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옥세현 모친이었습니다.

그 집은 바로 우물 옆에 있었습니다. 흙과 돌을 이겨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집이었는데 어설프게 보였습니다. 사람이 손으로 흙과 돌을 섞어 만든 집이다 보니 벽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형편없어 보였습니다. 지붕은 전쟁 중이라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씨레이션 박스를 펴서 덮어놓은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피난을 온 사람들이 그걸로 집을 많이 지었습니다. 씨레이션 박스는 비가 와도 새지 않아서 지붕을 덮어 놓으면 좋았던 모양입니다. 피난민들이 그런 집을 지은 것을 보긴 했지만 그렇게 작고 초라한 집은 처음이었습니다. 마치 시골에서 담장을 쌓을 때 흙과 돌로 엉성하게 만든 것과 같은 벽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다미 두 장도 안 될 정도의 좁은 방이었습니다. 문도 키가 큰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될 정도로 낮았습니다. 벽에는 종이나 신문지 한 장도 발라져 있지 않고 흙벽 그대로였습니다. 천장은 비가 샜는지 여기저기 얼룩져 있었고, 방바닥은 검은 비닐조각을 깔아 놓았습니다. 마치 어느 촌 마굿간 같았습니다. 그날 비가 온 뒤라서 방안 풍경이 더 우울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먼저 기도를 한 후 눈을 떴을 때 「참, 세상에 이런 집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방 안에 세간은 아무것도 없고, 옷 한 벌이 걸려 있었습니다. 양복 한 벌이었는데 그 집이나 방과는 어울리지 않게 좋아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양복은 엄덕문 先生이 아버님께 선물해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방 한쪽에 둥근 밥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 위의 연필꽂이에 몽당연필이 많이 꽂혀 있었습니다. 세간도 없는 방에 연필이 많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집에는 초등학생이 많은가? 왠 연필이 이렇게 많이 꽂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원필 先生이 그림을 그릴 때 선을 긋기 위해 연필을 많이 깎아 둔 것이라는 걸 후에 들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그렇게 초라한 집과 방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문득 「사람이 이 땅 위에 태어나서 이런 집에서 일생을 살다가 가면 얼마나 많은 한이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재림주님으로 오신 아버님께서 다다미 두 장도 안 되는 좁은 집에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버님께서 얼마나 기가 막힌 생활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예전에 일본에서 누군가가 간증하면서 「세상에 사람이 땅 위에 태어나서 이러한 집에서 일생을 살다가 죽는다면 얼마나 많은 한이 남을까?」 하던 내 말이 두고두고 가슴을 울리더라고 이야기하던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출발하셨던 아버님께서 메시아요 구세주요 勝利(승리)하신 천지인참父母님으로, 만왕의 왕으로 정착하실 때까지 얼마나 형언할 수 없는 어려운 노정을 걸어 오셨는지 생각하면 뜨거운 눈물이 나곤 합니다. 그 집은 부엌도 없어서 집 바깥에서 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비가 오면 방안에서 밥을 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어쩔 수 없어서 텐트를 바깥에 치고 취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 집이었지만 아버님께서는 그 집을 손수 지어 놓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釜山으로 피난을 와서 집 없이 지내며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하루가 저물어도 들어가서 쉴 곳이 없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그러다 범냇골에 집을 하나 짓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쌓아 올리면 비가 와서 무너지고, 또 조금 쌓아 올려 놓으면 비가 와서 무너지기를 세 번이나 했다는 것입니다.

그 방 한 칸을 만드시면서 참아버님께서는 많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올바로 세우는 복귀역사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기대를 하시고 계시는지 아셨기에 에덴동산에서 잃었던 참핏줄을 새로이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며 흥분된 마음에 새 역사를 찾으시는 소망에 가득 차 계셨던 것입니다.

겨우 집을 완공한 날 벽도 마르지 않았지만 들어가 누우니 세상 없이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대리석으로 멋지게 지은 집이 아니라 두 평도 안 되는 토담집이지만 고대광실의 왕궁보다도 값지고 아름다운 방 한 칸, 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으셨는지 잊을 수 없다고 하시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때 그 방안에 들어가서 「이런 집에서 일생을 살면 얼마나 한이 많이 남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왠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국방색 한복 바지를 입고, 위에는 낡은 갈색 점퍼를 입고 있어서 위 아래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양말은 툭툭한 미군용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대님을 매지 않고 바지를 걷어 올린 모습이었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아버님이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방에 들어와 저를 보시더니 「어디에서 왔소?」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저 밑에 梵天敎會(범천교회)가 있지요? 저는 거기서 여자 傳道師(전도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버님께서는 「아, 이 방이 찬데요.」 하시며 초록색에 별 무늬가 그려진 요를 펴시더니 「이 위에 올라와 앉으세요. 방이 찹니다.」 하고 권하셨습니다. 나는 「전 여기도 괜찮습니다.」라고 사양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계속 방이 차갑다며 요 위로 올라와 앉으라고 권하셨습니다. 권유에 못 이겨 그 위에 앉으니 아버님께서는 「오늘이 5月 10日인데, 참 뜻이 있는 좋은 날에 오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으로 「오늘이 무슨 날인데 저렇게 오늘이 좋은 날이라고 하나?」 하고 가만히 속으로 생각해 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내가 이북에서 이남으로 피난을 왔는데 이 집에서 귀중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그 글쓰기를 마친 날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글쓰는 일을 마치고, 지금부터는 내가 전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아버님께서는 그날 산에 올라가 「하나님, 저하고 약속하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값진 원리말씀 아래로 모여든다고 하셨습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 선의 세계, 사랑의 세계, 아버지의 세계를 이 땅 위에 이루어 놓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북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아직 한 사람의 생명도 못 찾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리운 중에도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 올바로 믿는 성도가 그립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를 보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하고 내려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초대도 하지 않은 기성敎會(교회) 여자 傳道師(전도사)가 방에 들어와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반가우셨겠습니까? 아버님의 용안에는 희색이 만면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자리에 앉은 저에게 「7年前부터 하나님께서 姜(강) 傳道師(전도사)를 굉장히 사랑했습니다.」라고 딱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고 청년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습니다. 「아니, 저 청년은 7年前에 나를 만난 적이 없는데 어디서 날 봤다고 7年 전에 하나님이 나를 굉장히 사랑했다는 말씀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7年前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7年前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으면서 나는 내 모든 일생을 하나님의 뜻과 복음사업을 위해 바쳐야 되겠다는 결의를 하고 본격적으로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생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7年 전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굉장히 사랑하셨다. 이 청년이 정말 뭘 좀 아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그다음부터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원리강의를 서론, 창조원리, 타락론, 종말론, 부활론, 예정론, 기독론, 복귀원리, 재림론 순서가 아니라 결론인 재림론부터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아버님께서는 종이를 작게 여러 조각으로 찢으며 처음에는 작은 종이조각에 재림론이라고 쓰시고 다른 종이조각에 각각 예수, 아담, 해와라고 쓰셨습니다. 그러시더니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 이야기를 할 때는 예수 종이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시고, 아담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담 종이를 앞에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강의를 들으면서도 정신을 집중하지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아버님께서 조용히 앉아서 강의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들었다 놨다 하시고 몸동작을 취하시며 강의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목소리가 크신지 내 고막이 터질 정도였습니다. 「아직 나는 젊어서 귀도 먹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저 청년이 저렇게 큰소리로 말씀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거라고 믿습니까?」 하고 너무나 큰 소리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聖經(성경)말씀을 믿습니다. 聖經(성경)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일점 일획도 가하지도 말고 감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聖經에 기록된 그대로 믿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은 「구름 타고 안 옵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구름 타고 안 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본인이 보시던 聖經(성경)을 펼쳐 가면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聖經(성경)을 얼마나 열심히 보셨던지 빨간 줄이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엘리야가 세례 요한으로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육신을 쓰고 오십니다.」라고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다면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재림하신 예수님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열정적으로 내 의문에 답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육신을 쓰고 오신다면 어디에 발을 놓으실 거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오시는데 韓國(한국)으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는 나라와 땅이 많은데, 하필이면 폐허가 된 韓國 땅에 예수님이 오신답니까?」 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1950年에 북한 상공에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습니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게 다 뜻이 있는 겁니다. 북한 상공에 왜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나타났겠습니까? 다 뜻이 있는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답변하시는 목소리가 얼마나 크신지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말씀을 하시는지 절정에 이르면 산천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그만 방에서 그렇게 크게 말씀을 하시니까 나는 속으로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아이고, 오늘 조용히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무슨 변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너무 큰 소리로 말씀하시면서 몸동작을 취하셨기 때문에 나는 벽에 등을 대고 되도록 멀찍이 앉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말씀에 취해서 펄쩍펄쩍 뛰면서 내 앞에 다가와서 말씀을 하시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질려서 나도 모르게 표정이 짜증스럽게 변해 버렸습니다. 조그만 방에 나 한 사람을 두고 춤을 추거나 연극을 하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니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내 바로 앞까지 오셔서 말씀하시다가 뒤로 물러나셨다가 펄쩍 뛰어 오르듯 하시면서 온몸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표정과 음성, 몸짓에 놀라서 혼이 빠져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그때 아버님께서는 나 한 사람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전하듯 말씀하신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전 세계 인류를 살리고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버님의 사명이시기에 비록 아버님 목전에는 나 혼자 앉아 있었지만, 아버님께서는 전 세계 인류의 모든 영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으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전 세계 인류의 심령을 향하여, 전 세계 인류의 생명을 향하여 그렇게 큰 목소리로 열정을 다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그날 아버님께서는 사생결단을 하면서 큰 싸움을 하는 사람처럼 사느냐, 죽느냐 하는 그런 기로에 서서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니 격식을 차리며 다정하게 「그러지 않는가?」 하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100% 확신과 자신을 가지고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나는 그때 말씀의 내용보다 아버님의 自信感(자신감)과 熱情(열정)에 많은 感銘(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도 傳道師(전도사)로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는 방식으로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이것은 이렇습니다. 저것은 저렇습니다.」 하고 결론을 정확하게 말씀하시는데 누구든지 들으면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신념과 열정이 넘치셨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대단한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버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보니 아버님의 눈동자가 번쩍번쩍 빛났습니다. 「이상하다. 저 청년의 눈동자가 번쩍번쩍 빛나네, 광채가 나네.」 하면서 혹시 내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어서 눈을 비비며 다시 아버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시 눈을 뜨고 바라봐도 아버님의 눈에서는 여전히 서광이 비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저 청년의 눈에 서광이 비칠까?」라고 생각하면서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아버님께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하셨습니다. 그때 7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내가 4시 조금 넘어서 아버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는데 7시가 넘었으니 3시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3시간이나 말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 또한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에 아버님께서 오늘은 그만하자고 하셨을 때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려고 일어났는데, 아버님께서 「밥 한 끼 나누어 먹는 것 아무것도 아닌데 食事나 같이 하고 가시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아닙니다. 우리집이 바로 이 밑에 있는데 뭘 食事를 하고 갑니까? 오늘은 그만 가야겠습니다.」라고 사양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님께서는 오늘 저녁에 꼭 여기서 食事(식사)를 하고 가야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말의 「꼭」을 日本語로 「가나라즈(かならず)」라고 합니다. 「가나라즈」라는 말까지 쓰시면서 「오늘 꼭, 필히, 여기에서 食事를 하고 가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을 하시는데,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꼭」이라는 아버님의 말씀에 깊은 정이 느껴지고 매료되어 결국 食事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전쟁 중이라서 다들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녁상을 받고 보니 너무 초라한 밥상이었습니다. 옥세현 모친이 저녁상을 차려 왔는데 소나무로 만든 밥상에다 찌그러진 양재기 그릇에 시커먼 보리쌀 밥이 담겨져 나왔습니다. 반찬도 신김치에 두부 몇 조각을 구워 놓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밥상을 앞에 놓고 앉았는데도 아버님께서는 얼굴에 기쁜 빛이 가득했습니다. 나와 같이 저녁을 드시는 것이 기쁘신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아버님께서 몇 번이고 「그때는 내가 가장 외로운 때였다. 가장 외로운 때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姜賢實을 보내 주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나에게 食事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아이구, 나 기도 안 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날 세 시간 동안 말씀을 들으면서 아버님께서 너무 강하게 우격다짐으로 야단을 하시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26年간 신앙생활을 해 왔기에 어디가나 자신이 넘쳐서 기도인도를 했는데, 그날은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기도 못 하겠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거절을 하자 아버님께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우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목이 메어 한참을 쉬었다가 또 계속해서 기도하셨는데, 뼈살에서 우러나는 심정에 사무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가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왔지만, 하나님이 저보다 수고를 더 많이 하신 줄 알고 있사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가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그 많은 남겨진 한을 제가 꼭 풀어 드리겠습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와 세계를 제가 찾아 세워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식해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는 제 자신이 꼭 되겠으니 하나님, 나를 보시고 위로를 받아 주십시오.」

그 기도 내용을 듣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하루 세 시간 이상 기도를 해 왔지만, 나의 기도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도 드릴 때마다 「병난 자는 병이 낫고, 시험에 든 자는 시험에서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그리고 지친 자에게는 용기를 주십시오.」 하는 것처럼 한결같이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先生님은 하나님의 서럽고도 애달픈 사정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 드리겠다고 기도를 하는구나!」 하는 거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그런 기도를 못 해 봤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기도 내용을 들으며 「아, 여기에 무엇이 있구나!」 하는 큰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날 저녁食事를 안 하고 그냥 집으로 갔으면, 아마도 나는 統一敎會 食口가 안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기도 말씀을 듣고 저녁을 먹고는 내가 달라졌습니다. 「나는 불효녀같이 하나님께 매달려 내 것을 채우려고 했는데, 이 청년은 자신의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하는구나!」 하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내가 흐느껴 울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오늘 이 어린 딸이 여기에 찾아왔습니다. 하나님, 무슨 뜻이 있어서인지 본인은 모르지만 이 딸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뜻을 알고 느끼고 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며 흐느끼셨습니다. 그렇게 흐느끼실 때는 목이 메어 기도를 이어서 하시지 못하고 가만히 계시다가 다시 이어서 기도를 하시고, 또 흐느끼시며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 모습에는 형식도, 가식도 없고 진심만이 있었습니다. 그 기도에 나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면서 나는 「이곳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고 계신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목이 메어 흑흑 하고 흐느끼면서 진실된 기도를 하시는 그 모습에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진실, 하나님을 편안히 모셔야 되겠다는 효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예수님을 믿어 왔지만 잘못 믿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나는 매일 내 욕심만 부리며 하나님께 요구만 하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천당에서도 좋은 자리에 보내 주십시오. 예수님도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만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드리는 불효를 했습니다. 내가 동기가 되고, 욕심이 중심이 되어 나를 중심으로 신앙했던 것을 깨달으면서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세상의 父母도 그 父母에게 와서 무엇을 달라고 해서 얻어가는 자녀보다는 옷 한 벌이라도, 밥 한 상이라도 대접하는 자녀가 귀하고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이 청년을 더 사랑하리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 기도보다는 청년의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감동의 기도가 끝난 후 저녁食事를 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진지를 맛있게 드셨습니다. 한 그릇을 다 드신 다음에 약간 여유가 생겼을 때 내가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날 나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제대로 된 질문을 못 했습니다. 아버님께서 강하게 일방적으로 질문하시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질문을 할 틈도 없었고, 엄두도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렇게 세 시간이나 말씀을 하셨는데 하실 말씀이 더 있으신가요, 끝나셨나요?」라고 여쭈었더니 「사실 내가 말이에요, 이야기를 하려 들면 며칠 밤을 새워서 이야기해도 계속해서 새로운 말씀을 할 내용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청년이 굉장히 큰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있구나. 聖經에 대한 새 말씀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니 굉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실 말씀이 많으십니까?」 그랬더니 「이집은 바깥으로 보기에는 초라하지요? 그렇지만 언제든지 문을 열어 놓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를 또 기다리시나요?」 하고 물으니 「이 땅에는 인생의 근본문제와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운 하늘의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서 언제든지 문을 열어 놓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헤어질 때 아버님께서는 「강 傳道師, 다음에 또 와서 말씀을 듣기 바랍니다.」라고 그러시기에 「시간이 있으면 오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께서는 단호한 어조로 「시간은 항상 없습니다. 시간은 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헤어져 걸어 나오는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돌아 보니 아버님께서 내 뒤를 따라오고 계셨습니다. 나는 「인사까지 했는데, 또 왜 날 따라올까? 참 이상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리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내가 뒤를 돌아보면서 「여기가 저희 집입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또 와서 말씀을 들으세요.」 하셨습니다. 아까 헤어질 때와 똑같은 말씀을 하시기에 「시간이 나면 가겠습니다.」라고만 말씀드렸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아버님께서는 또 「시간은 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하셨습니다. 결국 내가 「그러면 시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아버님께서는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께서 그때 사람의 생명을 찾고 구하기 위해서 당신의 입장이나 체면, 위신 같은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의 위신이나 체면을 생각하면 젊은 여자의 뒤를 따라오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귀의 길에서 한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계셨기에 내 뒤를 따라와 한 번 더 말씀을 들으러 오겠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아버님의 미소는 지금까지 나의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워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만난 반가움과 기쁨이 아버님의 얼굴에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옥세현 모친. 북학동 첫 본부교회.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는 1954년 5월 1일 서울시 성동구 북학동 391-6번지, 일명 ‘세대문 집’에서 창립됐다.

左が玉世賢(オクセヒョン)先生、右が康賢實(カンヒョンシル)先生
ソウル市城東区(ドンドング)北鶴洞(プカクドン)にあった最初の本部教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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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めての出会い

その日は1952年5月10日土曜日でした。朝から雨が降っていて、私は教会で静かに祈祷を捧げていましたが、ボンネッコルに住むという変わった青年に会わなければという決心が立ちました。「会ってみて賢くて神様が用いることのできる者なら、伝道して神様の業(わざ)をなす働き人に作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考えをもって、教会を出ました。

午後四時ごろ、道に出てみると雨はほとんどやみかけていました。しかし、青年の名前も知らず、顔も家も知りません。ただ女学生が住んでいる家の近くで、男たちだけで自炊して暮らしているらしいという話だけは覚えていたので、外に出ました。ボンネッコルの坂道を上って行きながら、男たちが自炊している家はどこですかと道行く人たちに聞いてみました。しかし知っている人はいませんでした。聞いてもその当時に自炊して暮らしていた男性が一人二人でしょうか。それでも、「神様、教えて下さい。会うべき人なら神様がその青年のいるところに導いて下さい。」という信仰を持ってずっと尋ねて回りました。

しばらく迷ったあげく、ある婦人が、「あのてっぺんに登れば井戸が一つありますが、その井戸の横に粗末な家が一つあります。その家に青年たちが住んでいるようです」と教えてくれましてた。坂道をずっと登っていくと、なるほど井戸が一つ現れました。鍋で汲み上げる泉のような井戸でした。井戸で手を洗っていたらきれいな一人のおばさんが水を汲むために井戸に出て来ました。歳は五十数歳ぐらいに見えますが、肌がきれいでしとやかな方でした。避難時代でしたからカーキ色のチマをはいていましたが、とても気品があるように見えました。

それでそのおばさんに、「この近くに青年たちが自炊している家があるということですが、もしかしてどこか知っていますか?」と言葉をかけました。そうしたらそのおばさんが、「あなたはどこの会社に通っていますか?」と聞きました。おそらく私の服の身なりを見て、ある会社に通う会社員と思ったようです。私はひざ下のスカートをはいて、男物のような靴を履き、聖書と賛美歌を脇に挟んでいました。

私は笑いながら、「違います。私はイエスを信じる者です」と答えました。そのころ私はイエス様を愛し、心からイエス様を伝えたくて誰に会っても、「私はイエスを信じる者」と言っていました。それほどイエス様を愛していたからです。

そうすると、そのおばさんは私の顔を再びまじまじと見て、「ああ、それなら私の家に入りましょう。」と言いました。「家はどこですか?」と聞くと、「これがその家です。」と言いながら、すぐ横の家に案内してくれました。その方がすなわち、玉世賢(オク・セヒョン)オモニでした。

その家は井戸のすぐ横にありました。土と石でこねて積み上げた家でしたが、粗野に見えました。人の手で土と石を混ぜて作った家なので、壁がなめらかでなく、でこぼこでひどく見えました。屋根は戦争中で米軍部隊で使う食料箱を広げて覆(おお)っておいたものでした。食料箱は雨が降っても漏れないので、屋根を覆っておくにはよかったようです。避難民たちがそんな家を建てていたのを見ることはあったのですが、そのように小さくみすぼらしい家は初めて見ました。田舎で塀(へい)を作るとき、土と石をおおざっぱに積みあげるのですが、ちょうどそれと似ていました。

中に入って見ると、たたみ二畳もないほどの狭い部屋でした。 入り口は、背の高い人だとかがんで入ら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低いものでした。壁には紙や新聞紙も貼ってなく、土塀そのままでした。天井は雨が漏ったのか、ところどころ染みがついていて、床は黒いビニールの切れ端が敷いてありました。それはちょうど、どこかの村の馬屋のようでした。その日はまた、雨が降った後だったので、部屋の中のようすがよりうっとうしいものみたく目に入ってきました。

部屋に入ってまず祈祷をして目を開けたとたん、「ああ、一体こんな家でも人が住めるんだなあ。」という思いが自然に湧いてきました。部屋の中には生活道具が一つもなく、服が一着掛かっていました。洋服でしたが、その家や部屋には似合わないほど良い服に見えました。後で知りましたが、その洋服は嚴德紋(オムドンムン)先生がお父さまに贈り物として捧げたものでした。

そして部屋の片隅には丸い食卓が一つありましたが、その上には鉛筆立てに短くなった鉛筆がたくさんさしてありました。生活道具もない部屋に鉛筆がたくさんさしてあるのを見て、私は心の中でおかしいなと思いました。「この家には小学生が多いのだろうか?なぜ鉛筆がこんなにたくさんさしてあるのか?」と思いました。金元弼(キムウォンピル)先生が絵を描くとき、線を引くために鉛筆がたくさん削ってあったものだと後から聞きました。

私はそのときまで、こんなにもみすぼらしい家と部屋を想像してみたこともありませんでした。ふと、「人がこの地上に生まれて、このような家で一生を生きたらどんなに多くの恨みが残るだろうか?」という思いになりました。

今も私は、その瞬間が思い出されるときがあります。再臨主として来られたお父様が、たたみ二畳にもならない狭い家で人類救援の役事を始められたということを考えると、お父様がどれほどひどい生活をされていたのか申し訳ない思いになります。昔、日本でだれかが証しをしながら、「この世に人が地上に生まれて、このような家で一生を生きて死ぬならどれほど多くの恨みが残るか?」と言った私の言葉が何度も胸に鳴り響くという話をしたと聞きました。

そのように苦しい状況で出発されたお父様がメシアであり、救世主であり、勝利された天地人真の父母様であり、万王の王として定着されるまでどれほど言い表すことのできない難しい路程を歩んで来られたかを考えれば、熱い涙が出てきもします。その家は台所もなく家の外でご飯を炊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その上、雨が降れば部屋の中でご飯を作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ではどうしようもないので、後になり外にテントを張って炊事をするようにはなりました。

そんな家でしたが、お父様はその家を自分の手で建てられてどれほど幸福であったか忘れられないと言われました。お父様が釜山に避難をして家なく暮らしながら、多くの苦労をしたと言われました。日が暮れても帰って休むところがなく、どれほどつらい思いをされたでしょうか?それでボンネッコルに家を一つ建てることにされました。しかし、少し積み上げたら雨が降って崩れ、また少し積み上げて置くと雨が降ってまた崩れるということを三度もしたというのです。

真のお父様はその一つの部屋を作りながら多くの考えをされました。間違った歴史を正しく立てる復帰歴史に、神様がどれほど大きな期待をもっておられるかをご存知なので、エデンの園で失われた真の血統を新しく取り戻そうとされる神様の心情を感じ、興奮した心を持たれ、新しい歴史を取り戻す所望(しょもう)でいっぱいに満ちておられたのです。

やっと家が完成した日、壁も乾いていなかったのですが、入って横になったらこの上なく幸福だったと言われました。大理石で美しく建てた家ではなく、二坪にもならない土塀の家ですが、古代官室の王宮よりも価値有る美しい部屋一つの、足を伸ばして横になれる家があるということがどれほど良かったか忘れられないと言われた話を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

私はそのとき、その部屋の中に入って、「こういう家で一生を暮らしたらどれほど恨みがたくさん残るか?」と思っている矢先に、ある青年が入って来ました。カーキ色の韓国服のバジをはき、上には古い褐色のジャンパーを着ていて上下が合っていませんでした。靴下は分厚い米軍用のものを履いていて、バジのすそのひもを結ばないで、すそをまくりあげた姿でした。その青年がすなわちお父様でした。

お父様は部屋に入って来て私を見られると、「どこから来たのか?」と尋ねられました。それで私は、「下のほうに凡川(ボムチョン)教会があるでしょう?私はそこで女性伝道師として仕事をしています。」と答えました。

そうするとお父様は、「ああ、この部屋は冷たいですね。」と言われ、星の模様が描かれた緑色の布団を広げられて、「この上に座りなさい。部屋が冷たいから」と勧められました。私は、「ここで大丈夫です。」と遠慮しました。しかしお父様は部屋が冷たいからと、しきりに布団の上に上がって座るように勧められました。何度も勧められるので、仕方なくその上に座ると、お父様は、「今日は5月10日ですが、本当に意義深い良い日に来られました。」と言われました。私は心の中で、「今日は何の日であんなに今日は良い日だと言うのか?」とじっと考えてみましたが、何も思い当たるもの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そのとき、お父様は、「私が以北(北朝鮮)から以南(韓国)に避難して来ましたが、この家で貴重な本を書き始めました。しかし、今日はその本書きを終えた日です。」と語られました。そうして、「今日本書きを終えて、今から私が伝道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心に決めて、山に登って祈祷をして下りてきたところです。」と言われたのでした。

後で聞いたことですが、お父様はその日、山に登って、「神様、私と約束されたことは、多くの人たちがこの貴い原理のみ言葉の下(もと)に集まるということでした。原理を中心とした一つの世界、善の世界、愛の世界、父の世界をこの地の上に成されると約束されました。しかし、以北から南に下って来て、まだ一人の生命も探し求めることができません。神様、私は人が恋しいのです。恋しい人の中でも、イエス様をよく信じる聖徒、正しく信じる聖徒が恋しいのです。神様、イエス様をよく信じる聖徒を送って下さい。」と祈祷をして下りて来たと言われました。しかし、招待もしていない既成教会の女性伝道師が部屋に入って待っていたので、どれほど喜ばれたでしょうか?お父様の龍顔(王の顔)には喜びの色がいっぱい満ちていました。

お父様は、座っている私に、「七年前から神様は姜(カン)伝道師を大変愛されました。」とただ一言言われました。私は大変驚いて顔を上げて青年を再び見つめました。「えっ?この青年は七年前私に会ったこともないのに、一体どこで私を見たと、七年前に神様が私を大変愛したなどという話をするのか?」という思いがわいたからです。

そうして、「七年前にどんな事があったかな?」とじっと考えてみました。振り返ってみると、七年前に韓国が解放(=終戦)を迎えながら、私はすべての人生を神様の御旨と福音事業のために捧げ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決意をして本格的に出発したのでした。「神様の御旨のために一生を生きようと決心した七年前から神様が私を大変愛された。この青年は本当に、何かがわかる人だな」という思いになりました。

お父様はそれから楽な姿勢で座られ、話を始められました。しかし、原理講義を序論、創造原理、堕落論、終末論、復活論、予定論、基督論、復帰原理、再臨論という順序ではなく、結論である再臨論から話されました。まずお父様は紙を小さくいろいろな形に破り、はじめに小さい紙の切れ端に再臨論と書かれ、他の紙切れに各々イエス、アダム、エバと書かれました。そうしてみ言葉を語られながら、イエス様の話をするときは、イエスと書いた紙を前に置いてお話しされ、アダムの話をするときには、アダムと書いた紙を前に置いてお話しされました。

しかし私は講義を聞きながらも精神を集中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なぜなら、お父様は静かにただ座って講義をされるのではなく、紙を上げたり下ろしたりされながら、体で動作をしながら講義をされたからです。そしてどれくらい声が大きいか、私の鼓膜が破れるほどでした。「私はまだ若くて耳も遠くないのに、何のためにこの青年はこんなに大きな声で話すのか?」という思いになりました。

お父様は、「イエス様が雲に乗って来られると信じていますか?」と余りにも大きな声で質問をされました。それで、「私は聖書の言葉を信じます。聖書に記録されたことは神様のみ言葉であるので、一点一画も加えてもならず減じてもならないとあります。それで私は聖書に記録されたそのままを信じます。」と答えました。

するとお父様は、「雲に乗っては来ません」と言われました。
お父様は、御自分の読んでおられた聖書を開かれながら説明を始めました。その聖書をどれほど熱心に読まれたのか、赤い線でぎっしり埋まっていました。「イエス様は雲に乗って来ら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様はエリヤが洗礼ヨハネとして来たのと同じように、肉身をもって来られます。」と話を続けられました。私は初めて聞く話なので理解できませんでした。「もしイエス様が人として来られるならば、同じ人間なのにどうして再臨されたイエス様だと信じられますか?」と反問したりもしました。お父様は熱っぽく私の疑問に答えて下さいました。

そして、「肉身をもって来られるならどこに足をつけられると思いますか?」と再び質問されました。イエス様が雲に乗って来られるのではなく、人として来られるが、韓国に来られると言われました。それで私は、「この世に国も多いのに、どうしてよりによって廃墟になった韓国の地にイエス様が来られますか?」と反問をしました。すると、「1950年に北韓上空にイエス様の顔の姿が現れたという話を聞きませんでしたか?」と言われたのです。もちろん、私もその話を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それで、「覚えています」と言いました。すると、「それがみんな意味があるのです。北韓上空になぜイエス様の顔の姿が現れるのでしょうか?みんな意味があるのです。」と話されました。

しかし、その質問に答えられる声がどれほど大きかったことか、私は集中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お父様がどれほど熱心にお話をされるかというと、話が絶頂に達すると山がゴーゴーと鳴り響くようにみ言葉を語られるのでした。「アイゴー、今日は静かに家に帰ることができず、何か事件に遭うのではないか?」という思いまでしました。

お父様は余りにも大きい声でみ言葉を語られながら体でも表現されるので、私は壁に背をあててできるだけ離れて座ろうとしました。しかし、お父様はみ言葉に酔い、ポンポンと飛びながら私の前まで迫って来て語られたりもしました。私は嫌気が差し、自分でも知らずにいらだつ表情になりました。小さな部屋に私一人をおいて踊ったり演劇するように話されるので、どうしたら良いかわかりませんでした。お父様は私のすぐ前にまで来られて話され、後ろに下がったかと思うと、またぱっと飛んで来るようにされながら、全身でみ言葉を語られました。

私はみ言葉を聞くどころか、お父様の表情と声、身振りに驚き、気が抜けてしまうようでした。そのとき、お父様は私一人を置いてみ言葉を語られたのではなく、全人類にみ言葉を伝えようとされたのだと、私は後で悟りました。全人類を生かして人類の生命を救援されることがお父様の使命であられるので、たとえお父様の目の前には私一人が座っていたとしても、お父様は全人類のすべての霊がその場に座っているものと考えられたのです。全世界人類の生命に向かってそのように大きな声で熱情を尽くしてみ言葉を語られたのでした。

それほど、その日お父様は死生決断をしながら大きな戦いをする人のように、生きるか死ぬかというそういう岐路に立ちみ言葉を語って下さりながら、「そうなるはずだ、そうであるだろう。そうなるようになっている。」というような言葉をたくさん使われました。そうしてお父様は、「これはこうです。あれはこうです」と結論を正確にお話しされるので、誰であっても聞けば頭を下げざるをえない信念と熱情があふれておられました。

み言葉を聞きながら、「本当にたいした方だなあ!という考えになり、お父様を見つめました。そうして見つめてみると、お父様の瞳がきらきら光っていました。「おかしい。この青年の瞳がきらきら光っている。光彩が出ている。」と思い、もしかして私の目に異常が起き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目をこすって再びお父様を見つめました。再び目を開けて見てもお父様の目には依然と曙光(しょこう)が照っていました。

それで、「どうしてこの青年の目に曙光が照っているのか?」と考えながらみ言葉を聞いていたのですが、お父様は、「今日はここまでにしましょう。」と言われました。そのとき、七時を少し越えていました。私が四時を少し過ぎてお父様のみ言葉を聴き始めたのですが、七時を越えたということは三時間み言葉を語られたことになります。初めて会った人に三時間も話すということは易しいことではありません。私もまた相当につらかったので、お父様が今日は終わりましょうと言われたとき、すっと立ち上がりました。「ああ、良かった。」と思いながら帰ろうと立ち上がったのですが、お父様は、「食べる物は何もないけど、食事をいっしょにして行きなさい。」と言われたのです。それで私は、「いいえ。私の家はすぐこの下にあるので、なぜ食事をして帰りますか。今日はこれで帰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と遠慮しました。

それでもお父様は、今日夕食は必ずここで食べて行かなければ、と何度も言われたのです。韓國語の「꼭(コク)」を日本語で「必ず」と言いますが、お父様は、「カナラズ」という日本語まで使われながら、「今日必ず、どうしてもここで食事をし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何度も言われるので、突然あきらめの気持ちになました。「꼭(コク)」というお父さまの言葉に深い情を感じ魅了されて結局食事を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当時は戦争中でもあり、みんな困難な生活をしていた時代でした。それで食膳を見ると、とてもみすぼらしい食事でした。玉世賢(オク・セヒョン)オモニが作ってきたのですが、松の木で作られた食卓に、へこんだ鍋の器に入れられたまっくろな麦ご飯が出されました。おかずも酸っぱくなったキムチに焼き豆腐何切れかが全部でした。そういう食事を前に置いて座っても、お父様の顔には喜びの色がいっぱいでした。私といっしょに食事を召し上がることが喜ばしいご様子でした。後で、お父様は何度も、「あのとき、私が一番寂しい時であった。最も孤独で寂しかった時だったので、神様が姜賢實(カンヒョンシル)を送ってくださったのである。」とお話しされました。

お父様は私に食事の祈祷をし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私は、「え、私は祈祷しません。」と言葉を返しました。その日、三時間もみ言葉を聞きながら、お父様が余りにも強く力の限りに、大声で叱るように語られたので、自分でも知らないうちに力が抜けていたからです。私は26年間信仰生活をして来たので、どこででも自信に満ちた代表祈祷をしましたが、その日はまったく勇気が出ませんでした。「私は祈祷できません」と二度お断りすると、お父様が祈祷をされました。

お父様は泣かれながら祈祷されました。声が詰まり、しばらく途絶えて再び続けて祈祷されるのですが、骨肉から湧き出る心情に染みた祈祷でありました。「神様の御旨を私が成して差し上げるために今までこの道を歩んで来ましたが、私より神様がもっと苦労をされたことを知っております。神様の御旨を私が成して差し上げます。神様のその多く残された恨(ハン)を私が必ず解いて差し上げます。この地の上に神様の国と世界を私が探し建てて差し上げます。そうして神様を安息させ喜ばせて差し上げる私自身に必ずなりますので、神様、私を見られ慰労を受けて下さいませ。」

その祈祷の内容を聞いて、私は本当にびっくり驚きました。私も一日に三時間以上祈祷をしていましたが、私の祈祷とは次元がまったく違う祈祷であったからです。私は祈祷をするごとに、「病気になった者の病気が治り、試練に遭った者に試練に勝つことができるよう力を下さいませ。そして弱い者には勇気を下さいませ。」というように、一様に神様に何かをして下さいという祈祷をしていました。

しかし、「この先生は神様の悲しくつらい事情を言いながら、神様の恨(ハン)を解いて差し上げ、神様の所願(しょもう)を成して差し上げると祈祷をするのか!」という、そこに深い感動を受けました。私はそのときまで一度もそのような祈祷をしたことがなかったので、良心の呵責を感じもしました。

その祈祷の内容を聞くと、「ああ、ここに何かあるな!」という大きな悟りを受けました。その日、夕食をしないでそのまま家に帰っていたとしたら、おそらく私は統一教会の食口になっていなかったでしょう。その祈祷の内容を聞き、夕食を食べてから私が変わりました。

「私は不孝娘のごとく神様に頼って私のものを満たそうとしたのに、この青年は自身のものを差し上げながら神様に侍り、安らかにして差し上げようとするのだなあ。」という反省の思いになりました。そういう思いになるや、涙があふれました。私がすすり泣いていると、お父様は、「今日この幼い娘がここを訪ねて来ました。神様、どんな御心があられるのか本人はわかりませんが、この娘をして神様の真の御心を知り、感じ、行うことができるようにして下さいませ。」とむせび泣かれました。

そのようにむせび泣かれ、ときには声が詰まり祈祷を続けることができずに、じっとされた後に、再び祈祷をされ、またしゃくり上げながら祈祷をされました。その姿には形式もなく、飾り気もなく真の心だけがありました。その祈祷に私は大きな恩恵を受けたのです。

その祈祷を聞きながら私は、「ここには、神様が共におられる」ということを大変感じました。声を詰まらせ、ひくひくとしゃくり上げながら真実なる祈祷をされるその姿には何事も混ざらない真実、神様が安らかになられるように侍って差し上げる、孝子の心情を感じることができました。「私はこれまでイエス様を信じて来はしたが、間違って信じて来たんだな!」と感じました。私は毎日欲心だけを出して、神様に要求だけして生きてきたのだな。「神様、私を天堂でも良いところに送って下さい。イエス様に誰よりもまずはじめに会わせて下さい。」という祈祷を捧げる不孝をしました。

私が動機となり、欲心が中心になり、私を中心として信仰したことを悟りながら悔い改めの涙がとめどなく流れました。この世の父母も、自分のところに来て何かくれといってもらっていく子供よりも、服一着でも食べ物一つでも持って来てくれる子供が貴く愛らしいでしょう。つくづく考えてみると、神様は私よりこの青年をより愛しておられるだろうという思いになりました。そして、私の祈祷よりは青年の祈祷をもっとよく聞いて下さるだろうという考えにもなりました。

そういう感動の祈祷が終わった後に夕食を取りました。お父様は食事をおいしそうに召し上がりました。その日私は聞きたいことはたくさんありましたが、質問らしい質問はできませんでした。お父様が強く一方的に質問され、お話しされたので、質問をするすきもなく、口に出すこともできなかったからです。

「今日、こんなに三時間も話をして下さったのですが、お話はまだあるのですか? それとも終わったのですか?」とお聞きすると、「本当は私がですね、話をして聞けば、数日夜を通して話しても継続して新しい話ができるほどの内容があります」と答えられました。私は心の中で、「この青年は途方も無い大きな話のふろしきを持っているな。聖書についての新しい話をいくらでもすることができるとは大したものだ!」という思いになりました。

「ええっ?そんなにお話がたくさんおありなのですか?」と言うと、「この家は外から見たらみすぼらしいでしょう?そうではあるけれど、いつでも門は開かれていて人を待っています。」と言われました。それで私が、「また誰を待っておられるのですか?」と聞くと、「この地上には、人生の根本問題と宇宙の根本問題を解決できなくて彷徨(ほうこう)する人がどれほど多いかわかりません。その人たちに私は新しい天の知らせを伝えてあげるために、いつでも門を開いて人を待っています。」と言われました。

その日、別れるとき、お父様は、「姜伝道師。次にまた来て話を聞くことを願います。」と言われたので、「時間があれば来ます」と答えました。すると、お父様は断固とした語調で、「時間はいつもありません。時間は作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と言われました。

あいさつをして別れて歩き出したのですが、後ろから足音が聞こえます。振り返って見ると、お父様が私の後について来ておられたのです。私は、「あいさつまでしたのに、またなぜ私について来るのか?本当に変だな!」と思いました。

そのように思いながら私の家の前に到着しました。私が後ろを振り返って、「ここが私の家です」と申し上げると、「また来て話を聞いて下さい」と言われました。さっき別れるときとまた同じ言葉を言われるので、「時間ができたら行きます」とだけ申し上げました。私の答えを聞いたお父様はまた、「時間ができて来るのではなく、作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と言われました。結局私が、「それでは時間を作ってみます」と答えました。

私の答えを聞いたお父様は少年のようなほほ笑みを浮かべられ家に帰られました。お父様はそのとき、人の生命を探し求めるために御自分の立場や体面、威信のようなものは一つも考えられないのだなということを感じることができました。お父様の威信や体面を考えれば、若い女性の後をついて来ることなどできないでしょう。しかし復帰の道で一つの生命を救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切迫した心情を持っておられるので、私の後をついて来て、「もう一度話を聞きに行きます」という答えを聞いてから御自分の家に帰られることができたのでした。

その日のお父様のほほ笑みは今も私の心の中に残っています。人が恋しく人が来ることを待っておられて、やっと会えたその嬉しさと喜びがお父様のお顔にそのまま出ていたからです。